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증거 인멸

1. 진화의 증거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화석.
    다윈 코드.

2. 정조는 물려받은 비자금을 가지고 있었을 까?
    고종은 무슨 돈으로 군비를 마련했을 까?
    청와대 공사가 이루어 졌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펌)
1990년 2월20일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뒤편 수풀 속에서 글씨가 새겨진 표석이 발견됐다. 그동안 짙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신축공사 과정에서 주변을 정리하던 중에 비로소 사람들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화강암 암벽을 깎아 만든 가로 2m50cm, 세로 1m20cm 크기의 이 표석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씨가 해서체로 쓰여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우리나라 금석학 대가 임창순옹(1999년 사망)을 모셔다 글씨 감정을 부탁했고, 임옹은 글씨가 3백~4백년 전에 쓰였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청와대는 옛 본관 터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쓴 표석을 새로 세웠고, 이 사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올랐다. 그러나 실제로 수백년 전에 이 표석이 세워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표석 발견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호실의 한 인사는 “표석이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일제시대 이곳에 조선총독관저를 지으면서 표석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추정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풍수학의 대가로 꼽히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조선시대엔 지금의 청와대 터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특정 지점에 표석을 묻어놓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게 하는 건 대원군이 많이 썼던 일종의 정치적 수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자리가 명당이란 주장은 오래 전부터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제기됐다. 고려시대 숙종 9년에 왕실의 이궁(離宮)을 현 청와대 터에 지었고, 조선 태조가 새 도읍을 물색할 때 이궁 터는 너무 협소해 여기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경복궁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 8년엔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을 조성해 각종 정각과 누각을 지었다. 수백년 전부터 청와대 터를 길지(吉地)로 여겼다는 뜻이라고 청와대 홈페이지에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주인만 되면 권위주의적 인물로 바뀌는 청와대 터는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청와대의 문제는 주산인 북악산이 수려하지만 규모가 인왕산에 비해 작아, 이런 곳에 외로이 오래 거주하다 보면 왜소한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이건 풍수학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환경심리학적 해석이다. 청와대 지대가 꽤 높아 이곳에선 남산과 서울시내를 모두 굽어볼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실제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출입기자들과 산행할 때 “천하제일복지란 글도 권력자 입장에서는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궁궐은 암투 모해 음모가 들끓었던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꼭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청와대는 흔히 구중궁궐에 비유된다. 여기엔 권부의 상징이란 뜻도 있지만, 국민과 떨어져 권위의 벽에 갇혀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실제 청와대에서 근무한 많은 인사들은 본관이 ‘조선시대 왕이 살던 대궐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박준영 전 청와대 대변인(현 전남지사)은 “본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그 내부장식과 형식적 웅장미에 압도돼 저절로 궁중문화에 젖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찬수 기자 pcs@hani.co.kr)

  - 다시 입대하려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복 은 곧 황금이요 돈.


3. 로켓 발사를 서두른 이유가 무엇일까.
    외계문명 접촉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