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6일 토요일

MUD COOKIE REPUBLIC

“지난 1994년 온두라스보다 더 가난한 땅 아이티에서 쿠데타가 벌어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축출됐을 때, 미국은 그의 복권을 추진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라는 거였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으로선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미군의 지원 속에 복귀엔 성공했지만, 아이티 경제는 송두리째 내려앉았다. 빈곤이 심화하면서 더욱 격한 혼란으로 빠져들던 2004년 다시 쿠데타가 벌어졌고,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다시 축출됐다. 미국은 쿠데타 세력을 두둔했다.”

미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6월30일 인터넷판에서.

 

영화 [Ghosts of Cite Soleil - 16 mm] : 2004년 배경 Repulic of Haiti

또는

Eat, for This is My Body/2007/미셀랑쥬 퀘이/105분/프랑스, 아이티/오후 2시/전주 8

전위적이고 초현실적인 <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니>는 미국 감독 미셸랑쥬 퀘이의 첫 장편영화다. 7분여간 창공에서 아이티 섬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무속의식과 군무 등 민족문화적 장면을 지나, 원주민 소년 10명의 대저택 방문을 쫓아간다. 병든 노모을 모시는 백인 여자와 흑인 시종이 사는 저택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서사가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이음새는 투박하다. 배경음악에 영화 속에서 연주되고, 연주장면이 배경음악으로 전환되는 청각적 경계의 희석은 시각적 혼돈에 비하면 친절한 편. 여주인과 시종의 몸이 뒤바뀌고, 서로의 나신을 관음하며, 밤이면 흑인에서 백인으로 변하는 기괴한 이미지를 따르다 보면 차라리 영상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데이비드 린치, 스탠리 큐브릭의 영향을 받았다는 감독에 따르면, 현실성 보다는 즉흥성에 무게를 두고 작업한 결과다. 1697년까지 한 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아이티 역사에 대한 감독의 외부자적 시선은, 백인 모녀를 만나기 전 몸단장을 하는 아이들과 총살장면을 재구성한 환영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졌다. 과장된 접사와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주는 심상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추천감상법. 단절에서 연결을 찾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또는 <남쪽을 향하여>

EBS 2007-11월3일(토) 밤 11시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섬. 백인 여자들이 모여든다. 고국에서는 사랑에 지치고 일상에 지친 보잘것없는 여자들이 돈만 들인다면 왕비 대접을 받는 곳. 그녀들은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부른다. 근육질의 매끈하고 젊은 원주민 청년들의 충성어린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루 종일 해변에서 피부를 그을리고 밤이면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을 그녀들은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다. 영화는 세명의 백인 여자들의 고백과 해변의 식당에서 일하는 흑인 남자의 독백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자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은밀한 구석을 고백하는데 이것은 그녀들이 왜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절실한 변명이다. 하지만 이 천국 같은 곳에 섹스를 넘어서는 사랑이 개입하면서 그녀들의 이상한 공동체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 중년 여자들의 허기진 욕망이 얼마나 절절한지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그녀들은 사실 그 땅의 어린 청년들을, 나아가 그 땅을 착취한다. 영화는 해변에서 백인 여자들과 천국을 즐기던 청년들이 자신들이 사는 동네로 돌아갔을 때, 아이티의 현실을 보여준다.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티의 현실을 눈앞에 두고도 그녀들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파라다이스에 도취된다. 영화는 그녀들의 파라다이스에 함께 매혹되는 대신 곪아가는 현실을 은폐한 그 파라다이스의 참혹한 결과를 보여준다. 쾌락의 해변에 비극적인 죽음이 들어선다. 인생 처음, 비로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은 때때로 연민을 자아내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순간 그녀들의 비겁함 또한 상기된다. 이들은 생존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타국에 와서 고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낭만을 사치한다. 그러나 사실 그 낭만의 밑바탕에는 돈이 있다. 브렌다라는 여인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흑인 청년이 카페 출입에 제지를 당하자 “믿을 수 없는 인종주의군!”이라고 어이없어하는 장면이 있다. 말하자면 이 여자들의 본질을 간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자신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교묘한, 수준 높은 인종주의인지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있는 여자들. 이 감상적이고 천박한 인본주의. 여인의 고독한 욕망이 그녀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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