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일 일요일

절차적 데모

몇년 전인가 미국 서부의 새너제이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립도서관의 정기간행물 열람대에 놓인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하이소사이어티」등등의 성인용 포르노 정기간행물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을 시간이 없을만큼 인기를 누리는데 문제는 도서관에서 그 포르노 잡지들을 열심히 보는 독자들이 주로 어린 미성년자들이라는 거였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머큐리」신문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연일 특집기사로,사설로 시립도서관을 질타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도서관이 시민의 자녀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신문의 주장은 당당했다.
구경꾼이었던 나는 「한국식」으로 생각했다. 즉각 시립도서관의 열람대에서 포르노 잡지들이 사라질 것이며 멀지않아 도서관장도 새 얼굴로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새너제이의 최대일간지 「머큐리」신문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었고 쟁점 역시 시립도서관 측에 불리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측 빗나가버렸다. 이 문제에 대한 시립도서관 당국의 입장 또한 아주 당당했던 것이다.
『도서관 당국은 최근의 일부 잡지와 관련한 여론에 귀기울이고 있으며 이 문제는 「구입도서 선정위원회」의 다음 정례회의에서 충분히 검토될 것이다. 위원회의 별도 결정이 있기 전까지 문제가 된 성인잡지들은 그대로 열람대에 놓여 있을 것이다』
시립도서관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서관에 비치하는 책의 선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그때의 여론에 의해서 원칙이 무너질 경우에 우리사회가 입는 폐해는 아이들이 포르노 잡지를 볼 때의 악영향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것이다. 공산주의나 반기독교적 서적들의 도서관 반입금지 조치가 우리사회에 결코 유익하지 않았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전두환 노태우씨를 다시 말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제4공화국」과 「코리아 게이트」를 통해서 그들 일당이 저지른 「나쁜 짓들」을 구체적으로 되새겨보게 된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막무가내식으로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여론재판을 통해서 그들이 해외망명길에 오르게 만들거나 자살해주기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여론재판은 옳지 않은 짓이며 여론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제도와 법으로 구체화돼야 한다는 것도 교과서에서 배웠다. 법에 의하지 않고 그들을 여론으로 애매하게 응징하는 경우에 우리사회가 보는 피해는 그들을 처벌하지 못해서 우리사회가 보는 피해보다 아마도 훨씬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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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의세상읽기]말도 안되는 세상
수정 제 1 조(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거나, 또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약화시키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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