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廷柱시인과 월북작가 林和의 부인 사이에 오고간 편지 한장이 시가 10억원대 토지의 임자를 결정했다.
문제의 땅은 서울 회기동(당시 경성부 회기정)에 살고 있던 것으로 등재돼 있는 玄在德씨 소유의 인천시 청천동 토지 1천8백평.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玄모씨는 우연한 기회에 월북만화가인 아버지 在德씨가 인천 일대에 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임자없는 땅으로 방치돼 있던 이 토지를 92년 4월 어머니 李모씨 이름으로 등기이전했다.
그러나 등기이전을 마친 직후부터 여기저기서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玄在德』 이라며 동명이인의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초본을 들고 나서기 시작했고 玄씨는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법정다툼에 휘말리게 됐다.
玄씨는 그때부터 「등기부 등재시점인 44년 당시,아버지 在德씨가 서울 회기동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국의 도서관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당시에는 희귀했던 「만화가」인데다 큰아버지 玄경윤씨(필명 玄德)가 조선문학가동맹에서 발행하는 잡지 「문학」의 발행인겸 편집인까지 맡았을 만큼 유명했던 월북작가라는데 희망을 걸었다.
먼지쌓인 도서관을 뒤지던 玄씨는 마침내 林和의 부인 池모씨가 徐廷柱 시인에게 보낸 편지가 실린 논문 한편을 발견했다.이 편지에는 『옆집에 玄德씨도 살고 있으니 회기동 집에 놀러오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이 한줄의 문장은 「玄德씨와 동생 在德씨가 회기동 林和의 옆집에 살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상대편에서는 다시 林和의 친구였던 玄德씨가 在德씨의 형 경윤씨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지만 玄씨는 「玄德」이란 이름 옆에 「玄경윤」이 병기된 60여년전 경기고 학적부를 들이대며 이 주장을 일축했다.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朴在允부장판사)는 이같은 증거들을 바탕으로 원고측이 玄씨 가족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에서 『토지의 소유주는 피고측으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李英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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